물결이 넘실대는 번역서로 한차례 읽고,
책의
표지를 이어 펼치니 동백꽃이 피는 원서로 다시 만났다.
좋은 책은
재독하기 마련이고 정말 훌륭한 책은 독자의 영혼에 가닿는다고 했던가.
훗날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내게 어떤 책으로 기억될까.
이렇게 두툼한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나면 번역가는 이전의 자아를 초월하여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듯하다.
문학적
함의를 품고 저마다 문체도 다른 것을 번역하는 사람이 아닌 그냥 읽는 독자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의 수고
덕분에 문학상을 받은 외국서적을 읽을 수 있다는 놀라움도 원서를 뒤로 넘길수록 조금씩 잦아들었다.
도리고가
풍차를 향해 돌진해나갈수록 풍차가 뒤로 물러나듯이 틈새로 아쉬움이 파고들었다.
번역서로
읽을 때 이야기가 복잡하고 산만해 어떤 부분은 필요이상으로 상세히 다루고 또 다른 부분은 너무 모호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원서로 읽으니 문체가 단정하고 탄탄하다.
응축된
어감을 풀어내다보니 좀 다르게 전달되지 않았나 싶다.
재독 때 보니 거의 앞부분에
이야기의 핵심이 전부 거론된다.
회고마다
나이대가 다른 도리고의 폭격ㅋㅋ 회상을 따라 마침내 집으로의 귀환이 포인트라지만
결국 이야기의 끝은 어머니와 함께 찾았던 교회의 빛을 되찾는 데 있다.
어린
아이에게 물음으로 남아있던 다 큰 남자들의 울음을 이야기전개 속에 비로소 파악하는 흐름이다.
죽음이
눈앞에 당도했을 때 소설 속 사내들은 어머니의 부름(Boy! Boy!)을 받는다.
그들은 집에,
탄생의
품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종종
진보와 개척의 시간을 선에 비유하는 반면 성찰과 돌봄의 시간을 순환의 원에 빗댄다.
선(여기선
대문자 라인)의 시간이 전쟁터의 분열과 파편,
상흔을
은유한다면 원의 시간은 폐허를 치유하는 시간인 것이다.
직선의
시간이 흔히 말하는 인간의 역사나 시계의 방향성을 추구하는 반면 원의 시간은 바다의 시간(sea-time)과 유사하다.
거침없이
몰아닥쳤다 쓸어가고 잠잠해지다 어느 순간 다시 부각되는 생사의 구분 없이 모든 게 뒤섞여 있다.
질서나
확실함과는 거리가 먼 시공간이다.
기억의
출몰과 제법 비슷하다.
+ Occasionally, she remembered a room by the sea and the moon and him, the green hand of a clock floating in the darkness, and the sound of waves crashing, and a feeling unlike anything she had known before or ever knew again. (416)+ Light was flooding a church hall in which he sat with Amy. Blinding, beautiful light, and him toddling back and forth, in and out of its transcendent oblivion and into the arms of women. (435)
재독하는 과정에서 도리고와
에이미가 마치 이란성쌍둥이처럼 여겨졌다.
두 사람
모두 안정과 평온을 제공할 파트너가 예비 되어 있지만서로 마주침으로써 그들 안에
존재하는 이탈의 욕망(escape time)을 알아본다.
거울처럼. 도리고가 덜 적극적이고 상황에
모든 걸 맡기는 태도를 취하는 데 비해 에이미는 관계에 있어 주도적이고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간파해간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에이미가 잃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들 안에서 진짜 초석을 발굴한다.
관성에
젖은,
자기위안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진짜를 영위한다.
에이미를
향해 끌릴수록 도리고는 책의 구절에 의존해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하던 것에서 벗어나 고유의 말을 쓰려(기록하려)
애쓴다.
기존의
로맨스물의 차용이 아니라 진짜를 말로 옮기다보니 그 자극제가 된 뮤즈 에이미와 관련된 회상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쟁터로 가기 전 도리고는
우연히 먼지 날리는 서점에서 동백꽃을 꽂은 여자를 보게 된다.
도리고에게
있어 기억/생의 욕망의 최전선에는 에이미가 딱 버티고 있다.
에이미의
등장으로 그는 약혼녀에게 끌리지 않음을 깨닫고 파도처럼 충돌하며 부수어지는 존재를 갈구한다.
물론
도리고는 양심과 도덕으로 마음의 축을 다잡고자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휘몰아치는 파도에 배는 거세게 요동친다.
그녀가
괜히 그를 흔든 게 아니라 그 안에 잠자고 있던 색욕과 청춘의 맹목성이 거품을 일으키며 일어선 것이다.
에이미
역시 타지에서 아버지뻘 남자의 안정에 기대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을
임신시키고 낙태시킨 것에 빚진 마음을 가진 남자의 친절함과 선량함에 반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어왔다.
아니,
깜빡
속았던 것이다.
에이미와
도리고의 파트너들은 착함과 헌신,
인내의
자질로 똑 닮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상대편은 그 평온함에 생을 걸고 싶지 않다.
기묘하게도 도리고와 에이미의
죽음,
즉
거짓정보는 파트너의 입(편지 포함)을 통해
통보된다.
원서로
읽으니 도리고와 에이미의 몸의 언어와 집착이 전혀 껄끄럽지 않았다.
영어와 한글 사이에 놓은 언어와 문화의 문제인 것 같다. 같은 내용도 한글로 접했을
때 검열이나 의식이 더 각을 세운다. 개인의 영역에 있어 그들의 몸과 감정이 솔직하게 다뤄졌을 뿐이다.
맹렬한
더위 속에 바다로 이어진 길이 보일 듯한 호텔 베란다의 풍경도 곧 있을 죽음의 불길과 상반되어 더 강렬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한 작품
안에서 욕망과 죽음의 붉은 깃발과 바다의 품과 기억의 물살인 파란 깃발이 혼신의 힘을 다해 휘날리며 팽팽하게 맞선다.
에이미와 도리고의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소설의 앞을 이끈다면 나머지는 공적인 전쟁터가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은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다른 전쟁소설과 마찬가지로 전쟁은 모두에게 파괴적이라는 교훈을 전한다.
커트
보니것이 경고하였듯 전쟁은 어린아이들을 총알받이로 앞세운 인간 말살 행위이다.
하지만
소설은 전통적인 전쟁터를 비껴간다.
일본제국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철로 공사에 투입되는 전쟁포로들과 관리인의 이야기이며 심지어 주인공은 군의관이다.총을 든 사람을 구경하기
어렵다.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건 굶주림과 전염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고픔과 휴식 없는 노동 착취 현장이다.
정글 속
철도는 기계 지원 없이 거의 맨손으로 이루어지고 속도전으로 인해 밤낮 없이 일하다 인간 형체를 잃고 말라 죽어가는 사람들의 끔찍함을
다룬다.
처음부터 호주 출신의
전쟁포로들이 일본인 관리의 지시대로 움직인 건 아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단막극도 올리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린다.
각자에게
포로가 아닌 이전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방패들을 한동안 소지한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뭉쳐야 산다는 신조가 자리잡고 있다.
적의와 안
맞음을 내려놓고 우선적으로 조력한다.
장마와
우기가 계속되며 생활터전이 진흙탕이 되고,
점점 챙
모자가 얼굴을 가리고 성기 가림막만 남지만 그들은 옆에서 자꾸 쓰러지는 전우를 돕는다.
호주인들에게 있어 스테이크를 못
먹는다는 건 우리와는다른 강도의 허기일성싶다.
아침은
쌀죽,
점심은
골프공 크기의 회색빛 주먹밥으로 연명한다.
진흙탕 속에도 서로가 서로를
공동운명체로 삼던 그들도 배고픔과 엄청난 노동과 잠 부족에 시달리면서부터 인간다움으로부터 멀어진다.
폭력 앞에
딴생각을 하며 생존하는 그들에게 “무서운 진동”
소리는
내면의 의식을 일깨우는 북소리가 되지 못한다.
구타당하는
다키와 그의 죽음이 세 명의 관리인 앞에 움직일 줄 모르는 삼백명의 포로로 가시화되듯 권력 구조를 짐작게한다.
이
무자비한 폭력은 인간의 역사 속에 늘 있어왔다.
다키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다가결국 죽지만 몇몇 포로는 그의 마지막 말을 잊지 않고 그의 기억 속생선 가게를 찾아가 수족관의 물고기를 모두
방생한다.
포로의
처지와 동일시하며 원래 속한 곳으로 돌려보낸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 보듯이 노인에게는 전쟁터에서 잃은 아들이
있다.
다음날 깨진 창문과 수족관과
물고기 값을 치르러 찾아간 그들은 뜻밖에도 주인장이 베푸는 밥상을 받는다.
세상에는
폭력과 이기심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친절함과 따뜻함도 공존함을 이런 식으로 보여준다.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은 어떠한
순간에도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됐다고 전할 뿐이다.
그의
자세가 이해가 되는 게 카프카의 <변신>의 그레고르의 죽음을 법정으로
가져가면 법은 가족의 책임과 본인의 나태함을 문제시한다.
그가
갑충으로 바뀐 데에는 과도한 출장 업무와 휴식 필요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음에도 회사는 무죄이거나 아주 최소한의 문책만 받을
것이다.
소설가는
전쟁터에서 죽은 자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나머지 삶도 똑같은 비중으로 보고한다.
내편 네
편 가르지 않는다.
일본인
관리인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들이
맹신하는 제국과 천왕에 대한 그릇된 헌신도 그들의 문화 안에서 설명할 어떤 것으로 설정한다.
전쟁터에서
건강과 자신을 동일시하던 타이니의 죽음이나 돈벌이를 위해 악명 높은 관리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고아나/최창민의 이슬로 사라짐을 편중됨
없이 담는다.
폭력을 일삼는 일본인
관리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이쿠는 시가 어떻게 껍데기로 오용될 수 있는지를 폭로하는가하면 반대로 장마다 한 줄로 응축되어 충분한 시어로
긍정하기도 한다.
심지어
<먼 북으로 가는
길>은 일본 기행문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같지만
다른 새로운 의미가 탄생한다.
전복 혹은
패러디의 힘을 빌려 미끄덩거리는 대상을손에서 놓치지 않고 붙잡는다.
이렇듯 <먼 북으로 가는
길>은 정통 전쟁소설이
아니다.
남녀
사이의 사랑을 지협적으로 비추던 카메라는 어느 순간 무수히 많은 사람의 생사가 흐르는 깊고 너른 바다로 향한다.
어린 시절
기억의 한복판에 놓인 교회의 빛은 다름 아닌 아내 엘라의 친절함과 기다림과 헌신(family time)임을 깨닫는 여정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도리고의 중심 안으로 들어간 유일한 빛이 에이미 뿐이라고 강조하지만 나는 다르게 읽고 싶다.에이미와 헤어진 이후로 다시 불이 켜지지 않는
등대가 되었다고 회고하지만 그의 불멸(neverendingness)은 삼남매를 타고 흐른다.
소설에서는 전쟁에서 죽어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아도 여러 불구 상태로밖에 나머지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피력한다.
신체적
불구,
정신적
불구,
성적
불구..
불현듯 오십년 전 기억이 몸 위에 둥둥
떠오르기도 한다.
얼굴은
비록 지워지고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감각으로 출몰한다.
그렇게
도리고는 바다의 시간에 전쟁이라는 생물이 덮쳐도 마지막까지 아무르를 노래한다.
짧지만
강렬한 죽음의 시를.One thousand others, names recalled, names forgotten, a sea of faces. Amie, amante, amour.
현대 영문학사의 지형도를 바꾼 오스트레일리아 대표 작가
고향 ‘태즈메이니아섬의 호메로스’로 불리는 리처드 플래너건
2014년 맨부커상 수상작.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태국-미얀마 간 철도건설 현장에서 살아남은 전쟁포로이자 현재 화려한 전쟁영웅으로 부활한 외과의사 도리고의 기억과 현실을 중심으로 사랑과 죽음, 전쟁과 진실, 상실과 발견의 세계를 그린 장편소설. ‘죽음의 철도’라고 불리는 버마 철도는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자 만든 길이 415km의 철도로, 군인과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건설됐다. 실제로 작가는 일본군 전쟁포로로서 미얀마 철도건설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경험을 되살려 작품을 썼다.
2014년 맨부커상 심사위원들은 사랑도 잃고 전우도 잃은 전장에서 삶을 짓누르는 경험을 떠안고 살아야만 하는 자의 트라우마를 담아낸, 그야말로 최고의 소설 이라고 했다. 심사위원장은 몇 해간 정말 좋은 작품들이 수상했지만, 올해 수상작은 걸작 이라며 세계문학의 카논으로 자리매김될 것 이라고 했다. 또한 여러 언론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판 전쟁과 평화 에 견주며 고전의 반열에 들어선 작품 비교 불가의 작품 그야말로 걸작 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상상력의 소유자’로 거론되는 리처드 플래너건, 그가 오랜 세월 작품의 완성도에 온 심혈을 기울인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은 수정같이 군더더기 하나 없는 서사시이자 진정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 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Winner of the Man Booker Prize
Nothing since Cormac McCarthy’s The Road has shaken me like this. --The Washington Post
From the author of the acclaimed Gould’s Book of Fish, a magisterial novel of love and war that traces the life of one man from World War II to the present.
August, 1943: Australian surgeon Dorrigo Evans is haunted by his affair with his uncle’s young wife two years earlier. His life, in a brutal Japanese POW camp on the Thai-Burma Death Railway, is a daily struggle to save the men under his command. Until he receives a letter that will change him forever.
A savagely beautiful novel about the many forms of good and evil, of truth and transcendence, as one man comes of age, prospers, only to discover all that he has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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