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일본 호러 걸작선


괴담을 읽으면 그 나라 문화가 읽힌다고 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크게는 아시아문화권으로 같이 묶이는 일본의 괴담집을 읽는 것은 한편으론 뻔하고 한편으론 기껍기도 했다. 아무래도 후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사고방식의 일면을 엿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 터다. 나는 예전부터 일본 문화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도 들은 풍월이 상당하다. 한때는 내가 의식하지 못한 일본 마니아인가 하는 생각에 반성도 했는데, 일종의 반일정서가 한 번씩 올라오는 것을 보면 잠깐 안심하곤 한다. 아무래도 문호 개방 전후 영향을 받은 세대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한다.한때 인터넷에 떠돌던 일본의 팔척귀신 이야기 같은 것들을 읽고 나서 우리네 민담과는 참 다르다 느꼈다. 우리 귀신들은 무서워봤자 한을 품은 이유가 명확하고 분출도 ‘내 다리 돌려줘!’ 이런 내용(?)인데 일본 귀신은 무차별적으로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비슷하게 읽은 글이 서양의 프릭쇼 같은 일본의 서커스단에 관한 것이었다. 관음증부터 시작해 글로 옮기기 힘든 변태스러운 것들을 추구하고 분출하는 욕망의 도가니였다. 그 정보의 진실성이나 사건의 일면만으로 일반화시키기 힘든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일본의 예술,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런 점들을 찾을 수 있기에 쉽게 잊히진 않는다.그때 괴담에 대한 해설이 오랜 시간 자연재해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일종의 공허, 허무가 사고방식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올 초 지진을 느껴보니 그 이유를 얼핏 알 것 같기도 하였다. 벼락이 무차별적으로 내리듯, 죽음의 손길 또한 특정인을 향하지 않으니... 그러한 점이 녹아든 것이 괴담 속 등장하는 피해자의 무차별성이 아닐까. 화의 정서 또한 고립된 공간 안에서 어떻게든 조화롭게 살아보려는 노력이라고 하질 않는가. 겉으로는 평화로울지라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분노한다는 점이 평화로운 일본 민족이라는 이미지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인은 우리를 가리켜 한이 많다고 하지만(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네들은 화가 많은 것 같다.일본 친구랑 이야기 중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서는 줄 이야기를 했다. 일본에서는 모두가 줄을 맞춰 서는데 한국은 새치기도 하고 그러더라? 하는 요지였다. 얘네는 이런 올려치기 같은 걸 잘한다. 좀 남다른 일본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지하철이 3시 12분에 오기로 했는데 13분에 오면 사람들이 말은 안해도 속으론 빡쳐한다는 것이다.(실제로 빡친다는 표현을 사용함) 바쁠 때야 그럴 수 있지만 매번 화가 나진 않는데 일본인들은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참아야하니까 별로 드러내 보이질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일본 밖엘 나오면 시끌시끌한건가 싶기도 하고 그랬다.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일본 문화나 그 기저에 있는 사고가 읽힌다. 따로 이야기를 빼서 쓴 사카구치 안고의 작품이 그러하고, 쓰가 데이쇼의 「구로카와 겐다누시 이야기」도 그렇다. 시대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여성 멸시적 사고, 아내를 시험한다는 점에서 「푸른 수염」이 생각났다. 유메노 큐사쿠의 「죽음을 부르는 신문」은 오늘날 보도윤리를 지키지 않는 언론인들을 떠올리게 했고, 「주문이 많은 요릿집」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는 동화적 감성이 엿보인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지옥변」은 예술지상주의, 우리나라 「광염소나타」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즈미 교카의 작품은 잘 읽히지는 않으나 환상소설의 대가다운 느낌을 준다.추천할 만한 작품은 「죽음을 부르는 신문」과 「지옥변」, 「활짝 핀 벚꽃나무 숲 아래」 정도였다.
일본 문학 대표 작가들이 선보이는
괴이하고 섬뜩한 공포의 세계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중, 공포를 다룬 것들을 선별한 이 책에는 귀신이나 괴물이 진짜로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포를 일으키는 존재가 환상속이나 꿈속 혹은 등장인물의 마음속에서 나올 뿐이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의 공포를 독자의 공포처럼 느끼게 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사카구치 안고 등 국내 독자에게도 널리 알려진 친숙한 작가들의 친숙하지 않은 공포 소설뿐만 아니라, 국내에는 널리 소개되지 않았지만 일본 독자들에게 열렬한 찬사를 받고 있는 유메노 큐사쿠, 오카모토 기도, 이즈미 교카 등의 일본 공포 문학의 대가들이 선보이는 독특한 공포의 세계도 국내 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


유령풀 - 오카모토 기도

유령 폭포의 전설 - 라프카디오 헌

활짝 핀 벚꽃나무 숲 아래 - 사카구치 안고

죽음을 부르는 신문 - 유메노 큐사쿠

주문이 많은 요릿집 - 미야자와 겐지

악령의 소리 - 나쓰메 소세키

구로카와 겐다누시 이야기 - 쓰가 데이쇼

지옥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기비쓰의 생령 - 우에다 아키나리

봄의 한낮 - 이즈미 교카

옮긴이의 글